
그의 가슴에 손을 얹어도 그의 가슴에 귀를 기울여도. 심장소리는 느껴지지 않았다. 심장의 떨림을, 나카하라는 알 수 없었다. 지금의 나카하라에게는 살아있다는 말 만큼 간절한 것이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걸터앉은 그를 바라보는건 상상이상으로 고통스럽고도 고달팠으며, 때로는 세상이 무너질듯이 혼란스러웠다.
"츄야."
그가 작게 미소지었다.
"츄야는 내가 살았으면 좋겠어?"
그의 눈 속의 작은 빛은 삶의 의지가 아닌 죽음을 향한 갈망. 그렇기에 나카하라는 답했다.
"글쎄."
오늘도 나카하라는, 수면 아래로 본심을 숨기고야 말았다. 비를 맞아 투명해진 산하엽처럼 불확실했던 그의 대답은 비가 그치고 나서야 제 색채를 되찾겠지. 그 때까지는 투명한 상태 그대로,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주기만을 염원할 터.
산하엽이 말하길 그둘은 겁쟁이이다.
*
때 이른 장마철의 습한 날씨와 살갖을 뚫을듯 떨어지는 비. 아마, 그 사고의 원인을 찾는다면 첫째는 그 누구라도 장마라 답할 것이다. 빗길 속 덜컹이는 버스 안, 대회준비로 시끌벅적한 학생들의 목소리는 나카하라의 귀를 자극했다. 요코하마에 위치한 이 고교의 체육부는 대회를 위해 도쿄로 향하고 있었다. 요코하마와 도쿄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 도착하는데 기껏해봐야 한 시간 정도가 걸리었겠지만, 이날 만큼은 달랐다. 예상치 못한 비에 버스는 본래의 길을 잃고 산 중턱을 넘어 꼬이고 꼬인 동선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이것이 사고가 난 두 번째 원인이라 할 수 있었다.
세 시간이나 도착시간이 지연되자 나카하라는 찝찝한 날씨에 인상을 찌푸리며 맨 뒷 자석에 누웠다. 혹여나 싶어 준비해온 목베개와 안대를 이리 유용하게 쓸 줄이야, 그는 며칠동안 이어온 훈련에 지쳤다고 시위라도 하듯 당당히 누워 잠을 청했다. 부원들은 나카하라를 툭툭 건들며 그를 방해했지만 나카하라는 이미 깊은 잠에 빠진 후였다. 버스는 아슬아슬한 절벽 사이의 커브길을 돌았다. 왜 이런 외진 곳 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이건 크나큰 실수였다는거다.
단언코 말해, 이 사고는 그 누구의 잘잘못도 따질 수 없다. 달리는 차 안에서 지루함에 마구 움직이던 아이들도, 빗길 속에서 조금 빠른 속도로 달린 버스기사도, 막히는 차량에 동선을 이상하게 바꾼 선생님도. 굳이 논한다면 변덕스러운 날씨와 약간의 불운이라 할 수 있겠다.
가장 변화구가 큰 커브길을 도는 순간, 앞 쪽의 타이어가 빗물에 미끄러져 방지턱을 뚫고 나아간다. 순간 앞으로 쏠리는 무게중심에 버스는 절벽아래를 향해 함몰되었고 그와 동시에 크게 휘청이는 선내. 갑작스러운 충격에 놀라 소리치는 학생들로 버스는 단시간에 공포와 혼란으로 차올랐다. 나카하라는 순간적으로 밀러온 충격에 손잡이를 잡으며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살폈다. 절벽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걸터 앉아있는 버스. 마치 바람에 나부껴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처럼 곧 떨어질 것이라 모두가 짐작할 정도로 위태로웠다. 조금씩 기울어지는 선내에 학생들은 몸부림 치기 시작했으나, 이는 추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는 성급한 행동이었다. 갑자기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침착하는 것은 이들에게 있어 버거운 일임이 분명했다. 선내가 기울어지면 기울어질 수록 공포가 커지며 나카하라도 떨리는 시야로 자신들이 떨어질 절벽 아래를 응시했다. 저 아래로 사과를 떨어뜨린다면 가혹한 중력으로 인해 그건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사과 뿐만이 아니다. 사람, 버스. 그래, 저 아래로 떨어진다면 시신이 멀쩡한 것 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수 있겠지.
"....얘들아, 진정하고 움직이지 마!"
간절히 떨리는 선생님의 목소리. 그는 단호하게 말하는듯 했으나 그의 몸은 육안으로도 떨림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럴지라도 그 소리에 정신이 든 나카하라는 혼잡한 선내와 충격에 빠져 절규하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조금씩 이성을 찾으며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심호흡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비상용 망치가 눈에 들어왔다. 창문의 가장자리를 망치로 강타하면 두꺼운 유리가 깨짐과 동시에 차 밖으로 탈출 할 수 있다는 안전교육시간 때 들은 내용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급하게 제 옆의 망치를 들어, 창문 가장자리를 강하게 때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자 절대로 깨지지 않을 듯 했던 유리에 금이가더니 이내 무너져 내렸다. 그 때의 유리파편이 나카하라의 살갖을 스쳤지만,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다들, 여기로 올라와!"
나카하라가 위로 올라오라 손짓하자, 학생들은 울음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미세한 행동에도 버스는 크게 휘청거렸으며. 20여명이 한번에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그 즉시 추락할 것이 뻔하기에. 그들의 행동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다급했다. 나카하라는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뚫고 위로 올라서서 버스 밖으로 나가는데 성공하자 파편이 몸 이곳저곳에 박혀 진득한 피가 흘러내렸지만, 아프지 않았다. 고통을 느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올라오는 친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창문에 긁혀 피투성이가 된 손은 처절하게도 그들을 향해 뻗어졌다. 그들의 눈에 비추어지는 건 희망이었다. 희망, 살릴 수 있다는. 살 수 있다는. 나카하라의 손과 친구의 손이 가까스로 닿은 그 순간. 버스의 엔진이 화염을 내뿜으며 폭발함과 동시에 커다란 진동과 열기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무게중심을 잃은 나카하라의 몸은 뻗어진 손과 멀어져 도로 쪽으로 떨어졌으며 버스는, 학생들은. 절벽 아래를 향해 항해하듯 빠른 속도로 추락해갔다. 나카하라는 떨어진 순간 다시 일어나 추락하는 버스를 향해 내달리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빠르게 멀어지는 선체에 닿을 수 있을리가. 마지막으로 그의 눈에 담긴 것은, 창문 사이로 뻗어진 손.
빗소리 사이로 굉음이 들려왔다. 비명, 나오지 않았다. 눈물,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저 멍하니, 하나의 검은 점이 되어 사라지는 저 물체를 바라봤다. 빗물 속에서 타오르는 붉은 붉꽃은 아아, 서늘해라. 제 손에 마지막으로 닿았던 그 온기를 되새겼다. 죄라도 지은 듯 제 손을 적시는 피를 빗물에 씻어 내렸다. 그래도, 그는 울음 지을 수 없었다.
*
[문호스트레이독스]
다자이 오사무 × 나카하라 츄야
01. 산하엽이 말하길
*
요란한 뉴스소리. 요코하마 중심지에 위치한 대병원 속에서는 다급한 사이렌 소리가 멎지 않았다.
-도쿄로 향하던 고등학교의 체육부 학생들이 불행히도 사고를 맞아...
시끄럽다, 하지만 듣는걸 멈출 수 없다.
-사망자 19명에, 생존자 3명. 이 중 2명은 중상으로 병원에 이송되어 치료받는 중입니다.
나카하라는 자신 외의 두 명의 생존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뉴스 자막은 그의 안심을 기만하듯 바뀌어갔다.
사망 20명 생존 2명.
또 다른 한 명이 떠나갔다는 그 소식에 나카하라는 숨이 막히는 듯 제 가슴을 틀어쥐었다.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하기 바쁘게, 카운트다운은 속도를 내어 숫자를 변경시켰다.
사망 21명, 생존1명.
그 순간, 나카하라는 헛구역질을 하며 제 심장을 강하게 쳤다. 분명, 불과 몇 시간 전 까지만 해도 함께 숨쉬던 사람들.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그는 그걸 받아드릴 만큼 강하지 않다. 아니, 죽음보다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받아드릴 수 없었다. 모두가 사라진 현실을? 아니. 자신에게 다가온 죄악의 허물을? 아니. 다친 손에 감긴 붕대 사이로 다시 피가 흘러내림에도 그는 손을 아프게 쥐며 숨을 헐떡였다. 이상하리만큼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비명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 현장을 발견한 간호사는 급하게 달려와 TV의 전원을 껐다. 나카하라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엔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기에. 간호사는 쓴소리 하나 하지 못하고, 나카하라를 부드럽게 진정시키며 그의 병실을 지켰다. 나카하라는 뜬 눈으로 병원 천장을 응시했다. 고요했다. 들리는 거라곤 빗소리 뿐. 허나, 그의 귀에는. 저승을 넘어온 자들의 원망섞인 비명이 들려왔다. 살려달라고, 죽고싶지 않다고, 그는 머릿속으로 수십 번이고 그들을 구하는 상상을 했다. 이렇게만 했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모두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숨이 막혔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심장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생각될 정도로 빠르게 운동했다. 피로 물든 붕대를 감은 두 손으로 제 귀를 틀어막아 소리가 멎기를 빌었다.
사실 그도 잘 알고있었다. 이 불행에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는 것을. 하지만, 지금 무엇이라도 원망하지 않으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았기에 그는 결국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기로 한 것이다.
사라지지 않았다. 가증스러운 자신의 숨결도, 머릿속에 뉴스에 나온 잿더미가 된 손도. 불 속에서 산화한 모든 것들. 그 온기를, 그는 알고있기에. 그 차가움을, 그는 알고있기에.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쓰고 이 모든게 꿈이길 그저 바랐다.
*
그가 입은 외적인 상처는 크지 않았기에 그는 원한다면 금방 퇴원할 수 있었다. 허나 그러지 않았던 것은, 며칠 내내 그를 쫓아다닌 카메라 소리와 기자들의 질문세례, 그리고 개인의 죄책감. 사건이 발생한지 일주일이 지난 후, 그가 병실 밖으로 발돋음한 이유는 불행하게도 제 친구들과 선생님의 마지막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코를 찌르는 향 냄새. 장례식의 분위기와 대조되는 밝게 웃는 모습의 사진. 화려하게 개화한 새하얀 국화. 그제서야 그는 그들이 없는 현실을 실감했다. 끊어지지 않는 유가족들의 곡소리는 그들을 위한 레퀴엠이었으며, 이내 한 줌의 재가 되어 세상의 한 곳에 묻힐 그들을 그리워하는 외침이었다. 나카하라는 간단히 반창고만 붙인 자신의 손으로 국화를 놓았다. 그는, 울지 못했다. 울 자격이 없다 생각했다. 만약, 만약 조금만 더 빨리 창을 깼다면. 넘어지지만 않았다면. 자신이 들고있는 21송이의 국화의 수가, 줄어들지 않았을까. 주변의 모든 사람이, 심지어 유가족들도 나카하라에게 그의 탓이 아니라고 첨언 했지만, 그에게는 아무의 목소리도 닿지 않았다. 본인들에게 듣는게 아니니까. 그들은 죽었다. 용서를 구할 수도, 받을 수도 없다. 본래 죽음이란게 이런 것일 터 이니. 어린 나이에 받아드린 죽음처럼 가혹한건 없었다. 삶의 의지 하나 없는 눈으로, 나카하라는 피어오르는 향연기를 응시했다. 장례식장의 입구에 그저 서서. 그 때, 익숙한 목소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카하라는 놀란 마음에 몸을 뒤로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영정사진 앞에 앉아 울고있는 어느 학부모의 옆에 앉아 절규하는 소년. 그 소년은 나카하라의 고교 운동부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나카하라는 이 사람을 알고있었다.
"...내가, 내가 죽었을리가 없잖아...!! 엄마, 엄마 나 좀 봐봐..."
처절한 그 목소리. 게다가 절망에 일그러진 그 얼굴은... 영정 사진 속의 친구와 똑같았다. 소년은 제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올리지만, 허무하게도 몸을 통과해 쓰러진다. 소리치는 소년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그곳에 앉은 학부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댈 뿐이었다. 나카하라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큰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아니, 주저앉았다. 온 몸에 서려오는 서늘한 한기와 창백해진 얼굴.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와 소년의 눈동자가 맞춰지자 소년은 투박한 옷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카하라에게 다가왔다.
"...츄야?"
분명하다. 저 소년은, 제 친구이다. 그래, 친구지만 저 아이는 분명 그때 죽었다.
그의 머리를 스치는 한 단어, 유령.
점점 좁혀지는 거리에 나카하라는 조금씩 뒷걸음 쳤다. 두려웠다. 자신을 원망할 까봐? 아니, 무엇일지라도. 귀신, 이라고 하는데 그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이건, 유령이었다. 그거 말고는 설명할 수 없었다.
"츄야, 내가...보여?"
그 한 마디에 나카하라는 장례식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헐떡여지는 숨. 비 내리는 듯 흐르는 식은 땀. 버틸 수 없었다. 자신의 병실로 달려가 문을 잠금과 동시에 주저 앉으며 숨을 헐떡이는 그 모습은 잔뜩 겁에 질려있었으며 마치 망자라도 본듯이. 아니, 망자를 보았기에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옷 몇벌 밖에 남지 않은 짐을 쌌다. 이 곳에 있고싶지 않았다. 저 먼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뜀을 느꼈다. 그게 공포로 인한건지, 죄책감 때문인지는 알지 못했다.
멀리, 멀리 떠나자.
결국 그는 도망치기를 택한 것이다.
*
담당 의사에게 양해를 구해, 요양을 하고싶다고 변명하여 나카하라는 요코하마 변두리에 위치한 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는 아예 요코하마와 떨어진 시골 병원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들은 그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시 위험할 수 도 있다하며 그를 변두리에 있는 작은 병원으로 보내었다. 도시와 동떨어져 있기에 차로 30분, 그리고 30분 정도를 더 걸어야 도착하는 그 병원은, 사진으로 봐도 작고 초라하기 짝이없었다.
"혹시나 불편한게 있으면 언제나 연락 하도록 하렴."
나카하라를 데려다 주러 온 의사는 긴 분홍머리의 여성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오자키 코요. 코요는 그 누구보다도 나카하라를 걱정해주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내가 마침 이 곳에 아는 사람이 있어 이 곳에 보내는 거란다. 혹여나 그 사람이 너에게 모질게 대하거든 나에게 연락한다고 하려무나. 하긴, 그 사람 성격에 너에게 불친절 할 리가 없긴 하지만."
코요는 실없는 이야기를 늘여놓으며 딱딱하게 굳은 나카하라를 다독였다. 아이가 저 초라한 병원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그녀는 친절히 짐을 들어주며 나카하라를 병원으로 인도했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요?"
계속 이어지는 산길에 지친 나카하라가 물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단다. 꽤나 외진 곳이지? 하지만, 네가 원했던거니 많이 원망하진 말아주렴."
코요가 부드럽게 답했다. 꽤나 모나 있었던 나카하라의 마음도, 그녀의 한 마디에 조금 유해지는 듯 했다. 대략 10분 정도를 더 걸은 후. 그들은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코요군~! 여기일세."
저 멀리서 흰 가운을 입은 중년 남성이 손을 흔들었다. 코요가 나카하라의 짐을 그에게 넘기자, 그는 나카하라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했다.
"반갑네, 츄야군. 난 자네의 담당 의사가 될 모리 오가이일세."
그러자 나카하라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의 악수를 받아드렸다. 직업병인지 하얀 장갑을 낀 상태였기에 손의 온기를 느낄 순 없었지만.
"그럼... 아이를, 잘 부탁 할 테니."
코요는 소매로 제 입을 가리며 고개를 숙여 둘에게 인사했다.
"매주 휴일 마다 내가 들릴 테니, 다음주에 보자꾸나."
코요가 부드럽게 웃으며 나카하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카하라는 말로 대답하진 않았지만, 그에 대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뒤돌아보며, 나카하라는 모리를 따라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
"자네가 지낼 병실은 503호 이네. 이래보여도 여기서 가장 높은 층이지. 코요군이 특별히 부탁하길래 준비했다네."
꽤나 위태로워 보이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5층까지 올라갔을 때, 나카하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병실이 아닌 한 소년이었다. 제 또래로 보였는데, 그 용모가 꽤나 수려했다. 아니, 마치 명화 속 미남을 그대로 꺼내온 것 처럼 아름다웠다. 더벅한 다갈색 머리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눈. 길을 지나가는 그 누구라도 그 모습에 한 번쯤 뒤돌아 볼 것만 같았다. 온 몸에 칭칭 둘러진 붕대가 꽤나 이질적이긴 했으나, 이곳은 병원이니까. 나카하라는 조금 이상할 정도로 그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소년이 고개를 나카하라 쪽으로 돌리자 둘의 눈이 맞춰지고, 그는 의아한듯 자신의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러자 츄야도 그를 따라 고개를 꺾었다. 소년은 그 후 다시 고개를 왼쪽으로 꺾었다. 츄야도 그를 따라했다, 앵무새 처럼.
"이제 들어가면 된다네."
친절히 병실문을 열어주는 모리에게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소년은 사라졌다.
나카하라의 병실은 1인실 이었는데, 꽤나 아늑하고 편안했다. 살짝 벗겨진 벽지는 이 병원의 시간을 의미하는 듯 했으며, 방을 가득 메운 풀내음이 그의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창문 사이로 흐르는 기분 좋은 바람에, 그는 침대 위에 쓰러졌다. 그동안의 아픔은 잠시 잊고, 오늘 만큼은 쉬어보자.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며칠만의 편안한 잠자리였다.
*
아, 춥다.
활짝 열린 창문에 나카하라는 몸을 떨며 일어났다. 밤바람이 생각보다 차가웠다. 사실, 이렇게 오래 잘 생각은 없었지만 어느덧 일어나니 시계는 오전 4시 반을 가르키고 있었다. 문득 일어나니 화장실에 가고싶어졌다. 이 병원은 꽤나 옛날에 지어진 거라서 1인실 안에 화장실이 같이 있진 않았기에 긴 복도 끝의 공중 화장실에 가야했는데, 시간도 시간이고 장소도 장소인지라 변소에 갈 용기가 쉽게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며칠 전에 귀신까지 본 몸이었으니. 하지만 나카하라는 눈을 꼭 감고, 우측 공중 화장실을 향해 내달렸다. 너무 어두워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공중 화장실은 언제나 불이 켜져 있기에 헤매지 않고 안전하게 도착지에 닿을 수 있었다.
말끔히 용변을 보고, 손을 씻자 그의 손에 덕지덕지 붙어져있던 반창고가 떼어졌다. 그 사이로 잔상처들이 보였지만, 나카하라는 거슬린다는듯 망설임 없이 반창고를 떼어내 휴지통에 던졌다. 손은 아직도 아려왔지만, 그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이 다음부터였다. 복도가 너무나 어두워 호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방 번호는 503호.. 하지만 그게 어딘지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카하라는 벽을 더듬으며 대충 503호로 추정되는 곳의 문을 열었다. 방 안이 보이지 않아 침대를 찾아 벽을 더듬다가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그 때 보이는건, 침대 위에 누워있는 아까전에 본 그 소년. 깊이 잠 들었는지 갑자기 켜진 불빛에도 아랑곳 않고 잠을 청하는 듯 했다. 나카하라는 밖으로 나가 호실을 확인했다.
502호.
사과는 내일하고 돌아가야지.. 그가 다시 불을 끄기 위해 스위치에 손을 올리는 순간.
"자네 지금 거기서 뭐하는겐가?"
부드러우면서도 깊이있는 목소리는 차분히 나카하라에게 속삭였다. 나카하라는 자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급하게 뒤를 돌아봤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의 행동은 더욱 거세었다. 그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저 침대 위의 남자와 똑같은 소년. 자신보다 큰 키 때문에 나카하라는 그를 올려다봐야 그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순간 끼쳐오는 서늘한 한기. 나카하라는 직감적으로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유령이다. 그렇다면 한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저기, 침대 위의 저 사람은 잠들어 있었지만 살아있었다. 유령은 통상적으로 죽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었으니, 이건 꽤나 모순적인 상황임이 분명했다.
"뭐야, 정말로 내가 보이는 거였나.."
그가 당황한듯 작게 웃자, 나카하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내지었다. 해는 져버린지 오래인 새벽의 시간. 들리는 심장소리는 나의 것인가, 저 자의 것인가.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과 비현실적인 이 상황에 둘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너.... 귀신이냐?"
나카하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그도 이런 물음은 들어본 적 없다는듯 질문했다.
"그러는 자네는 귀신도 무당도 아닌데 어떻게 나를 보는겐가?"
오래되어 깜빡거리는 전등과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 공포영화에 나오기 적합한 배경에서 둘은 마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듯 했다. 빛에 반사된 먼지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이 순간, 새벽의 시간은 둘만을 남기고 흘러간다.
*